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비야 FC (문단 편집) == 개요 == [youtube(axKwZhcAqPM)][* 세비야 FC의 메인 응원가로 1983년 앙헬 루이스 오스키길레아 데 론칼레스가 작사를, 마누엘 오스키길레아 데 론칼레스가 작곡을 맡았다.] [youtube(ocXj6Nad_Wc)] [* 세비야 FC의 공식 100주년 기념곡(Himno del Centenario). 클럽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5년 지정되었다.] 100년 이상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세비야 동부 특유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클럽. [[레알 베티스]]와 오랫동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투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라리가]] 우승은 1회(1945-46 시즌)뿐이지만, 유독 '''[[UEFA 유로파 리그]]에서는 무려 7번이나 우승'''하는 막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는 유로파 리그 최다 우승 기록이며, 2위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리버풀 FC]], [[유벤투스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3회 우승) 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안달루시아 더비' 혹은 '세비야 더비'로 불리는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의 라이벌 대결은 [[스포르팅 히혼]]과 레알 오비에도의 '[[아스투리아스]] 더비'와 함께 스페인에서 가장 치열하면서도 폭력적인 더비로 손꼽힌다. 심지어, [[엘 클라시코]]마저도 폭력적인 부분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할 정도다. 과거에는 구단주들끼리 주먹다짐도 벌어졌고 세비야 구단주가 레알 베티스 구단주를 계단에서 밀어버려 굴러떨어지게 만든 사건도 있었을 정도였다. '로스 네르비오넨세스(Los Nervionenses)'란 애칭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별명이 붙은 이유는 네르비온(Nervion)이란 세비야 동부 지역을 팀의 근거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네르비온은 일찍부터 세비야에서 가장 현대화 된 지역이자 상업 중심지로 손꼽혀 왔으며, 명문 세비야 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비야는 창단 이래 이 지역의 중산층으로부터 꾸준한 지지를 받아 온 '부자들의 클럽'이다.[* [[http://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431&aid=0000000299|관련기사]]] 이러한 배경은 노동자 계층에 대한 엄청난 차별대우를 불러왔다. 창단 얼마 뒤에는 아예 노동자나 빈민층 출신 선수들의 입단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파장을 불러왔고, 이에 불만을 품은 반대세력에 의해 창설된 클럽이 바로 베티스였다. 베티스 역시 '레알(Real)'이란 작호가 말해주듯, 처음에는 귀족층 및 왕가로부터 지지를 받은 클럽이었지만, 세비야에 의해 배척된 노동자 선수들과 팬들을 모두 받아들인 만큼 태생 자체가 '반 세비야적'일 수밖에 없었다. 세비야 팬들인 세비이스타(Sevillista)와 베티스 팬들인 베티코(Betico)는 처음부터 공존할 수 없는 사이였던 셈이다. 세빌리스타들은 베티코들을 '페티스(Fetiz, 쓰레기들)'로 부르며 멸시했고, 반대로 베티코들은 세빌리스타들을 '팔라가나스(Palaganas, 허세 부리는 놈들)'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100년에 가까운 앙숙관계인 세빌리스타와 베티코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패배하는 걸 더 기뻐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1999-00 시즌 당시 세비야와 베티스는 동반 강등의 아픔을 겪었는데, 세비야가 꼴찌로 먼저 강등되자 베티스 팬들은 축하 쇼를 펼쳤고, 이후 베티스마저 막판 강등이 확정되자 이미 강등된 세비야 팬들은 아예 퍼레이드를 벌였다고 한다.] 2007년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에는 많이 분위기가 완화되었다지만 아직도 울트라끼리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더비때는 각 팀의 울트라들이 응원을 가기 위해 경찰이 동원되어 호위를 할 정도. 2021-22 시즌 ELO 포인트 89점으로 구단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참고로 최저치는 2부 리그 충격의 강등 당시에 기록한 59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